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 신라 54대)의 첫째 아들 박언침(彦忱)이 밀성대군(密城大君, 밀성은
현 밀양)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제일 종가이며
밀양 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뉘어 지고, 밀양 박씨 내에서도
여러개로 분파되었으며, 이들은 또 여러파로 다시 나뉘어져서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밀양박씨는 본관별 인구에서 김해김씨(가락)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
[ 분파(分派), 계파(系派) ]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 8세손 박언부(彦孚)
은산공파(銀山公派, 박영균), 행산공파(杏山公派, 박세균), 좌상공파(左相公派, 박상례), 규정공파(糾正公派,
16세 박현),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 10세 박원), 밀성군파(密城君派, 13세 박척)로 다시 나뉨.
·도평의사사공파(都評議使司公派) : 8세손 박언상
·좌복야공파(左僕야公派) : 8세손 박언인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 : 8세손 박양언 ·판도공파(版圖公派) : 8세손 박천익 ·좌윤공파(左尹公派)
: 8세손 박을재
·동정공파 : 13세손 박원광 ·밀직부원군파
: 15세손 박중미 ·정국공파 : 15세손 박천 |
[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박언부(彦孚)
: 고려 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최충(崔沖)과 함께 태사(太師)를 지낸후 문하시중(門下侍中)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규정공파(糾正公派) 박강생(剛生)
: 고려말 문과에 참찬의정부사에 이르렸으며 조선이 개국되어 호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훗날 수원부사를 지냈고, 문장이
뛰어나 문명이 높았다.
박심문(審問)
: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야인을
토벌하었는데, 계유정난으로 김종서가 살해되자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다 사건이 탄로가 나자 음독 자결하였다. 박중손(仲孫) :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를 거쳐 도승지가 되고 계유정난 때 병조참판으로
수양대군(세조)을 도와 정난공신2등에 올랐으며, 세조가 즉위하지
이조 판서를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고 밀산궁에 봉해졌다. 박건(楗)
: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5대(세조~중종)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였고,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3등으로 밀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박훈(薰) : 장령,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박충원(忠元) : 동부승지,
대사성, 양관대제학, 지중추부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밀원군에
봉해졌다. 박계현(啓賢)
: 명종 때 문과에 급제, 병조판서를 지냈다.
박승종(承宗) : 밀양박씨 가문에 유일하게 영의정을
지냈다. 박영(英) : 중종
때 무신으로 학문에 뛰어나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박성원(聖源)
: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 박의중(宜中) :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하고 밀직제학을 거쳐 예문관 제학 겸 대사성이 되었으며,
조선이 개국되자 정도전, 조춘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에
참여하였다.
박거겸(居謙) :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성종
때 좌리공신4등으로
밀산군에 봉해졌다. 박종남(宗男)과 박영신(榮臣) 부자,
박열(說) : 우찬성(右贊成)을
지냈다
·밀성군파(密城君派) 박신규(信圭) : 청백리로서
서예에 뛰어 났다. 박이서(彛敍) : 선조
때 문과에 올라 정언 교리를 지냈다.
·복야공파 박연(堧)
: 조선
초기의 명음악가
박제가(齊家)
: 실학의 대가.
밀양박씨는 조선에서 문과급제자 261명, 상신
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2명을 배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