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계영(啓榮)의 아들. 1652년(효종 3) 진사(進士), 1660년(현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지낼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임기가 끝난 뒤 백성들의 유임 상소로 재임(再任)했다. 후에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거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나가 역시 선정,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680년(숙종 6) 형조 판서에 특진, 이듬해 아들
성의(性義)가 범한 죄로 안변부사(安邊府使)에 좌천되었다가 다시 승진하여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서예(書藝)로 이름이 높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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