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號)는 아들이다.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583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를 칠 때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진, 이듬해 부령부사(富寧府使), 이어서 길주(吉州)·온성(穩城)의 부사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춘천부방어사(春川府防禦使)로서 적의 북진을 막았고, 분조(分朝)의 동부승지(同副承旨)·병조
참의(兵曹參議)를 거쳐 이듬해 진주목사(晋州牧使)가 되었으나 관찰사와의 의견 충돌로 파면, 뒤에 이순신(李舜臣)에 의해 주사조방장(舟使助防將)이
되어 연해(沿海) 5읍(邑)의 군병(軍兵)을 장악, 한산(閑山)·장문(場門)·영등포(永登浦)·견내량(見乃梁) 등의 해전(海戰)에서 공을 세웠다.
후에 상주(尙州)·광주(廣州)의 목사(牧使)를 거쳐 회령부사(會寧府使)에 전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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