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천군(凝川君) 박중손(仲孫)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이 되고, 교리(校理)를 거쳐 사정(司正)을 지냈다.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 되었고, 사인(舍人)·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거쳐
1468년(예종 즉위) 수전라도관찰사(守全羅道觀察使),
이듬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에 오르고 1472년(성종 3) 진하부사(進賀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후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거쳐
147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1479년 황주선위사(黃州宣尉使),
이듬해 반송사(伴送使),
1483년(성종 14)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다음해 평안도 관찰사, 대사헌, 2년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1492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 1495년(연산 1) 우참찬(右參贊)으로서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를 겸하여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형조 판서 우찬성(右贊成)을 거쳐 좌찬성(左贊成)으로 세자이사(世子貳師)를 겸했다.
1504년(연산 10) 폐비(廢妃) 윤씨의
추시(追諡)를 반대하다가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 1506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가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과
반정(反正)에 참여, 중종을 추대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이 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
뒤에
좌찬성·영경연사(領經筵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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