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0년(신라 탈해왕(脫解王) 4년)
8월4일 새벽에 어느 사람(또는 호공)이 월성(경주) 서리(西里)를 걸어가는데 밝은
빛이 계림(鷄林)에서 비치는 것이 보여 가서 보니 소나무 높은 가지에
금빛 찬란한 금궤가 걸려있고 아래에서 흰 수닭이 울고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숲으로 가서 궤를 열어보니 어린 남자아이가
누어있다가 곧 일어났다. 왕이 "하늘이 내리신 아들"이라며
아이의 이름을 어린아이라는 뜻의 알지(閼智)라고 하고 성을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김(金)이라고 했다. 왕이 좋은 날을 골라 알지(閼智)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태자의 자리를 파사왕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김알지(金閼智)는 김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김아도(阿都)를, 아도는 김수류(首留)를,
수류는 김욱부(郁部)를, 욱부는 김구도(俱道)를, 구도는 김미추(未鄒)를
낳았다. 김알지(閼智)의 7세손인 미추가 262년 신라 13대 미추왕(味鄒王)에
올라서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되었다. 신라는 총 56명의 왕중에 김씨가
38명이다.
대종인 경주 김씨는 조선시대까지 총 600여개의
본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약 270여개 본관만
남아있다.
신라 29대, 무열왕(武烈王)의 5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시조(始祖)로하는 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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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始祖)로하는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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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후손인 김영이(金令胎)를 시조(始祖)로하는 영산김씨(永山金氏, 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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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6대, 문성왕(文聖王)의 5세손 김락(金樂)을 시조(始祖)로 하는
당악김씨(唐岳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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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6대,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始祖)로 하는
선산김씨(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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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순왕(敬順王, 김알지의 28세손, 신라 56대 왕, 신라의
마지막 왕)은 후백제 견훤이 경애왕을 죽게 한 뒤 왕위를 오르게
하였으나,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고 고려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 받아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냈다.
경순왕의 9아들 중 첫째 아들 김일(鎰)과 김굉(鍠)을 제외한 7아들은
낙랑공주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첫째 김일(鎰)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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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의태자(麻衣太子)로
잘 알려진 김일(鎰)은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愷骨山, 금강산)으로 입산(入山)하였다 - 부안김씨(부령김씨), 후손은 통천김씨,
후손- 부여김씨. |
둘째 김굉(鍠)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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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김운발(金雲發))은
나주김씨, 후손- 교하김씨, 울산김씨(蔚山), 안로김씨, 해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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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김명종(鳴鐘)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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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김씨의 영분공파, 후손-
강화김씨, 계림김씨, 낙안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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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김은열(殷說)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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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김씨의 은열공파, 넷째 아들
김은열(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으며, 둘째 아들- 구안동김씨, 4세손-
영광김씨, 5세손- 서흥김씨, 5세손 김봉기(鳳麒)의
넷째 아들- 김녕김씨, 7세손-도강김씨, 8세손-
전주김씨, 9세손- 양주김씨,
첫째 아들 김정구의 11세손- 청풍김씨, 13세손-
밀양김씨, 14세손- 야성(영덕)김씨, 15세손-
월성김씨 후손인 김방경의 넷째 아들-
대구김씨, 후손- 안악김씨, 후손-
안산김씨, 후손- 연주김씨, 후손-
영산(靈山)김씨, 김녕에서 분관-
양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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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김석(錫) 낙랑공주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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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김씨 후손-
개성김씨, 고령김씨, 광주김씨, 설성김씨, 적성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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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김건(鍵) 낙랑공주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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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은 홍주김씨 강서김씨.
강릉(후)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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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김선(鐥) 낙랑공주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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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양김씨 후손
- 담양김씨, 예천김씨,
청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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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김추(錘) 낙랑공주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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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김위옹(金渭翁))은 삼척김씨,
셋째아들(김우(金佑))는 희천김씨, 후손-
영월김씨,
진주김씨a, 9세손- 남원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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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김덕지(德摯) 순흥안씨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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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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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계 김씨에서 다른 성(他姓)으로 갈려간
성씨 -
개성(改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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