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흥광(興光)은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세째 아들이다. 그는 신라(新羅)가 장차 국난(國亂)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 현 담양군 평장동)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학분을 닦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선조의 세거지인 광산(光山, 광주)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 정2품
벼슬)가 계속 8명이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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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김식(軾) : 신라에서 각간(角干)을
지냈다. 김길(佶) :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개곡공신에 책록되었다. 김준(峻) : 좌복야에 이르렀다. 김책(策) : 964년(광종
15)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과거제도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펴 평장사를 역임하였다. ·김정(鼎) : 시조의 15대손으로 고려 때 삼중대광에
올랐으며, 아들인 김약채(若采), 김약항(若恒), 김약시(若時) 3형제대에서
광산김씨가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김국광(國光) : 광산김씨의
첫 정승(좌의정)을 지냈다. ·김극성(克成) : 영의정을 지냈다.
·김장생(長生) : 김국광의 5세손, 예학(禮學)의 태두로서 그의 학문은 이조판서를
지낸 아들 김집(集)에게 계승되어 부자가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는
전무후무한 영광을 누렸다. ·김천택(天澤) : 가인(歌人). '청구영언'을
내었다.
·김만기(萬基) : 대제학, 총융사(摠戎使)를 지냈다.
·김만중(萬重) : 김만기 동생,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의 작가이다.
·김진규(鎭圭) : 김만기의 아들, 예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다.
·김양택(陽澤)
: 김진규의 아들, 대제학, 영의정을 지내며 3대 대제학, 형제 대제학의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김춘택(春澤) : 시문집 10권을 남긴 문인이다.
·김영수(永壽) : 고종 때 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다.
·김광재(光載) ·김태현(台鉉)
김덕령(德齡)
광산 김씨는 조선시대에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여기에서 정승이 5명, 대제학이 7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이 나왔는데,
특히 대제학 7명은 광산 김씨를 더욱 빛나게 한 사계(沙溪) 김장생(長生)의
자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