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
김씨 (道康 金氏) |
시조(始祖) : 김희조(金希祖) |
시조 김희조(希祖, ?~1199, 호는
강성, 시호는 문효)는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殷說)의 7대손이다. 그는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 병부상서(兵部尙書)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도강백(道康伯)에 봉해짐으로 후손들이 도강을 본관으로 하였으나
문헌이 실전되어 계대를 상고 할 수 없다.
|
|
[ 분파(分派), 계파(系派) ] 태인 서정공파 - 김원경(原卿) 강진
사정공파 - 김을경(乙卿) 강진 조사공파 - 김일(鎰) 인천
병사공파 - 김을상(乙祥) |
|
[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김회련(懷鍊) :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김약묵(若默) :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52년(명종 7) 한산군수로 재임하면서
선정으로 표창을 받고 뒤에 집의, 목사, 내자시정 등을 역임하였다.
·김후진(後進) : 일찍이 이항의 문하에서 경서와
역서를 연구하고 임진왜란 때 이귀가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가하였으며 그후 많은 군량을 바쳤다. 김도원(道元) :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전적, 병조좌랑등을 지내고 1624년(인조
2) 이인좌의 난을 의금부 도사로 평정하여 분무공신일등에 녹훈되었다. 김영상(永相)
: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며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리자 국가의 운영을 한탄하며 두문불출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이 주는 노인은사금을
거절하고 독립을 역설하던 중 일경(日警)에게 체포되어 감옥에서
단식 끈에 순절하였다. |
|
[ 상계 세계도(上系世系圖) ]
|
|
[ 집성촌(集姓村) ] 전남 진도군 임희면 연동리 전남
강진군 강진읍 송덕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용화리,
석문리 전남 영광군 홍농면 월암리 |
|
[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도강(道康) |
|
[ 항렬표(行列表)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사(士) 혁(赫) |
흠(欽) 석(錫) |
영(永) 영(泳) |
술(述) 주(柱) 병(柄) |
환(煥) 섭(燮) |
기(基) 규(奎) 재(在) 재(載) |
호(鎬) 현(鉉) 종(鍾) 진(鎭) |
수(洙) 제(濟) |
상(相) 식(植) 표(杓) 환(桓) |
희(熙) 형(炯) |
33세 |
34세 |
35세 |
|
|
|
|
|
|
|
재(載) 경(坰) 균(均) |
옥(鈺) 현(鉉) |
한(漢) 태(泰) |
|
|
|
|
|
|
|
|
|
[ 인구(人口) ]
21,981명. (1985년) 21,274명. (2000년 통계청) |
|
[ 관련 사이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