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오연총(延寵) : 1107년(고려
예종
2)에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여 용맹을 떨쳤던 명장, 이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다. 오한경(漢卿) : 찬성사에
이르렸다. 오선정(先廷) : 공조전서를 역임하였다.
오윤겸(允謙) : 추탄공, 오인유의 14세손, 선공감역의
좌부승지를 지낸 오희문(希文)의 아들, 조선 선조 때 사미시에 합격하여
관찰사와 좌부승지를 지내고 인조반정 후 노서의 영수가 되어 대사헌,
이조판서를 역임한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오달제(達濟)
: 오윤겸의 조카, 병자척화삼학사의 한사람. 오도일(道一)
: 오윤겸의 손자, 문장이 뛰어났으며, 숙종 때 도승지와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 오르고 병조판서를 지냈다. 오명항(命恒)
: 병조판서를 역임후 분무일등공신에 올라 해은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에 이르렸다. 오두인(斗寅) :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숙종 때 형조판서를 지냈다. 오태주(泰周)
: 오두인의 아들, 현종의 부마로서 서예가로 이름이 났다. 오원(瑗)
: 오태주의 아들, 대제학에 이르렸으며, 영조에게 학문과 덕을 닦는
요령을 진언하였으며, 옳다고 믿는 일은 직언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오재순(載純) : 오원의 아들, 양관 대제학을
역임했다. 오세창(世昌)
: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오동진(東辰) :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여 무장항일운동을
벌이다 붙잡혀 옥사했다. 오긍선(兢善) :
한국의학의 개척자요, 사업가였다. 오상순(相淳)
: '폐허'의 동인으로 문단의 괴짜시인이라 불렸다. 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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