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다.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김시습(金時習), 안응세(安應世)와
친교가 있었다. 1478년(성종 9) 앞서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顯德王后, 단종모)가
나타나 아들의 살해를 책했다고 하여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소릉의
복위를 상소했으나 도승지 임사홍(任士洪), 영의정 정창손(鄭昌遜)의
저지로 실패하자 이로부터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복위를 상소했다고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게 되었다.
1513년(중종 8) 소릉이 추복(追復)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좌승지에 추증, 장흥의
예양서원, 의령의 의양서원, 고양의 문봉서원, 오현사 등에 제향,
1782년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 생육신(生六臣)의 창절사(彰節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추강집(秋江集)",
"추강냉화(秋江冷話)",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귀신론(鬼神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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