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金時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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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생육신의 한사람.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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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에 이미 시에 능했고, 5세엔 [중용]
[대학]에 통하여 신동으로 이름났다. 5세에서 13세까지 김반의 문하에서
공자, 맹자, 시경, 서경, 춘추를 윤상에게서 예서와 제자백가를
배웠다. 세조 1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되어 이름을 설잠이라고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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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4년 '탕유관서록후지'를,
세조 6년에는 '탕유관동록후지'를 썼으며, 세조 9년에는 '탕유호남록후지'를
저작, 이 해에 책을 사러 서울에 갔다가 효령대군의 권고로 세조의 불경
언해사업을 도와 내불당에서 교정의 일을 맡았으며, 1465년(세조 11)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독서를 시작하고, 2년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 낙성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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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14년 금오산에서 '산거백영'을
썼고, 성종 7년에 '산거백영후지'를 지었다. 1481년(성종 12)에 47세에
환속, 성종 16년에 '독산원기'를 썼다.
절개를 지키면서 불교ㆍ유교의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1782년(정조 6) 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에 재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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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江陵金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