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在)의
아우이다.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우왕 때 삼척(三陟)에 들어온
왜구를 격퇴하고, 사복시정(司僕侍正)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에 동조했고, 응양군 상호군(鷹揚軍上護軍) 겸 군부판서(軍簿判書)를 거쳐 밀직부사에
올랐다. 정도전(鄭道傳)과 같이 이성계(李成桂) 일파와 활약하던 중
정몽주(鄭夢周)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동지밀직사사가 되었다.
이어 정도전(鄭道傳),
조준(趙浚), 윤소종(尹紹宗),
조인옥(趙仁沃) 등 52인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조선개국을 추진하고, 판중추원사가 되어 개국공신 1등으로
의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참찬문하부사 겸 판상서원사, 우군절제사(右軍節制使)에
이르렀다. 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함께 이방원(芳遠, 太宗)에게 처형되었다.
태조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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