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조잠(岑)은 고려 때에 양주(楊州)의
정조호장을 지냈다. 그의 선계는 송나라 태조의 후예
4형제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중 첫째는 배천(白川), 둘째는
풍양(豊壤), 셋째는 한양(漢陽), 넷째는 양주(楊州) 조씨(趙氏)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계보가 있기 전의 일이어서 잠(岑)까지의 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양주조씨(楊州趙氏)는 시조 잠의 중손대에서
정평공<계생>파(靖平公<啓生>派), 강화공<유중>파(江華公<惟中>派),
문강공<말생>파(文剛公<末生>派), 제학공<종생>파(提學公<從生>派)로
갈리는데, 그 중 계생의 아들 극관(克寬)·수량(遂良) 형제를 비롯,
수량의 아들 정서(廷瑞)와 종생(從生)의 아들 번(藩), 손자
계동(季同)·귀동(貴同) 등 일문이 모두 단종조 계유정난에 김종서(金宗瑞)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이 두파의 후손은 빛을 보지 못했고, 오직 문강공파의 후손만이
번성하여 비록 세도가문은 아니지만 조선 중기 이후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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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정평공파(靖平公派, 啓生)
·문강공파(文剛公派, 末生)
·제학공파(提學公派, 從生)
·강화공파(江華公派, 惟中)
정평공파와 제학공파는 1453년(단종 1)의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김종서(金宗瑞)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현재 그 후손이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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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조말생(末生)
조정(挺): 1619년(광해군 11) 우의정
조창원(昌遠) : 인조의 국구(國舅)
조태채(泰采)
조계원(啓遠) : 현종 때의 형조판서.
조태억(泰億)
조두순(斗淳)
조병세(秉世) : 을사조약 때 기울어지는 국운(國運) 앞에 충의를 다하다
자결하였다. 양주조씨는 조선조에서 왕비1명, 상신 8명,
문형 3명, 호당 1명, 청백리 1명, 공신 2명, 문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