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정보천(普天, 시호 정희(貞僖))은
고려(高麗)에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그의 선계는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유검필(庾黔弼)에게 명하여 탕정군(湯井君, 탕정은 온영(溫陽)의 옛이름)에 성을 쌓을
때 정씨의 선조가 감독을 맡은 공(功)으로 벼슬을 주고 그의 자손은
대대로 그곳 향직(鄕職)인 호장(戶長)을 제수(除授)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온양(溫陽)으로
본관을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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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정작진, 정작정 : 정보천의 아들, 찬성사를 역임했다.
정자준 : 간의대부를 지냈다. 정응휴
: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감찰어사를 역임했다. 정순붕(順朋)
: 성재(省齋), 명종 때 우의정 정렴(磏) : 정순봉의 아들, 장혜공(章惠公), 벼슬은 현감에 그쳤지만 중종·명종대의 학자로
유교(儒敎)·불교(佛敎)·도교(道敎)는 물론 천문(天文)·의술(醫術)·음룔(音律)에 정통하고 문장·산수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정만석(晩錫)
: 숙헌공(肅獻公), 순조 때 청백리, 우의정
정민시(民始)
: 정조 때 시파(時派)의 거두
정두경(斗卿)
: 현종 때 학자로 시문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정창순(昌順)
: 정조 때 예예조판서·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냈다.
정희번(姬藩) : 고송(孤松),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로 호종하고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온성근(溫滅君)에 봉해졌다.
정뇌경(雷卿)
: 이조참판에 추증, 뒤에 찬성에 가증되었다. 온양정씨는 조선조에서 상신 2명, 공신 1명,
장신1명, 문과 급제자 43명을 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