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0년(인조 8) 별시문과에 장원하고, 전적을
거쳐 정언·지평·수찬·교리 등을 지냈다. 1637년 사서로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볼모로 심양(瀋陽)에 잡혀갈 때 수행하여 그 곳에서 앞서 1618년(광해 10)
건주정벌 때 포로로 청나라에 잡혀간 뒤 청나라에 벼슬하여 세도를 부리며
왕을 모독한 정명수(鄭命壽)·김돌(金突)이 우리나라에서 청나라에 보내는
세폐를 도독질하자 그 죄상을 고발하여 청나라 황제에게 그들의 처벌을
강력히 주청했으나 도리어 청나라 형부에 잡혀 1639년 사형당했다.
이조참판에 추증, 뒤에 찬성에 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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