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들과 교유했다. 1539년(중종
34) 공조참판이
되고, 병조참판, 한성부 우윤을 거쳐 1542년 호조판서에 승진했다.
1545년(인종 1) 대사헌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을 때 인종이 승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小尹)으로서 윤원형(尹元衡), 이기 등과 윤임(尹任) 등
대윤(大尹)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자 소윤(小尹) 측에 가담하여, 을사사화(乙巳土禍) 때 대윤(大尹) 일파의
제거에 활약하였다. 그 공으로 보익공신(保翼功臣) 1등이 되고,
우찬성(右贊成) 겸 지경연사(知經?事)에 승진하여 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이 해 우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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