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유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성리학 연구에
전념, 임헌회(任憲晦)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닦아 그의 학풍을 이었다.
노론 학자들의 학통을 이어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의 사상을 신봉했으나
주리, 주기의 양설을 배척하고, 절충적인 경향을 취했다. 1882년(고종 19)
유일로 천거되어 선공감 감역이 되었고, 그 후 강원도 도사, 장령, 순흥부사,
중추원찬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했다.
만년에는 전라도의
계화도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태안의 안양사, 부안의 계양사 등에
제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