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懷德) 출신, 이조판서 박중림의 아들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고, 집현전 학사를 거쳐 1438년 사가독서를
했고, 1447년(세종 29)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했다.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다.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등 당대의 유망한
젊은 학자들과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고, 이들 학사들 중에서 경술(經術)과
문장·필법이 뛰어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세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그 울분으로 자살하려 하였으나 성삼문(成三問)의 만류로 단념하고,
단종복위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고, 1456년(세조 2) 다시 형조참판으로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류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김질(金礩)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발각, 사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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