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지중추원사·평안도절제사를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중추원동지사로 정2품(正二品)에 올랐다.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端宗) 복위를 모의하고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는 연회장소에서 세조를 살해하는 소임을 맡았으나 김질(金礩)의 배신으로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복종하지 않아 죽음을 당하였다.
학문에 뛰어나 절의파(節義派) 학자로 알려졌다. 숙종 때 병조판서가 추증되었다.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洪州)의 노운서원(魯雲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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