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 157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랑 을 거쳐 청도군수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병 과 싸웠다. 1595년
순천부사가 되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영의정 류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나주목사가
되어 금산을 수비하다가 이순신(李舜臣)과 합세, 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막아
분쇄하려 했으나 관찰사 황신(黃愼)의 무고로 투옥당했다가 곧 심희수(沈喜壽) 서경주의 상소로
석방되었다. 1601년(선조 34) 대구부사를 지낸 후 사직하고
은퇴, 김륵 김우옹 등과 교유, '반야심경' 등을 강론하여 여생을
보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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