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안씨 구 (竹山 安氏 舊) |
시조(始祖) : 안방준(安邦俊) |
시조 안방준(邦俊)은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이원(李瑗)의 삼형제
중 큰아들로 본래이름은 이지춘(李枝春)이었으며 신라 경문왕 때 왜구의 노략질을 평정한 공으로 안씨(安氏)를 사성받고 방준(邦俊)으로
개명하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 뒤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게를 이어왔다.
안씨의 원래 성은 이씨(李氏)였으나
806년(신라 애장왕 7) 당나라 용서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와 개성의
송악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던 이원(李瑗)의 아들 3형제가 864년(신라 경문왕
4)에 왜구를 평정한 공을 세워 안국의 공신이라 하며 안씨를 하사하고
이름을 바꾸게 하였다. 큰 아들 이지춘(枝春)은 안방준(安邦俊)으로 이름을 바꾸어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져서 죽산안씨(竹山安氏)의 시조가 되고, 둘째 아들
이엽춘(葉春)은 안방걸(安邦傑)로 이름을 바꾸어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으며 셋째 아들 이화춘(花春)은 안방협(安邦俠)으로 이름을 바꾸어 죽성군에
봉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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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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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안극인(克仁) : 고려시대에 공민왕의 국구로서 우문관대제학을 지냈다.
안숙로(淑老) : 도순문사(都巡問使)를 지냈다. 안맹담(孟聃)
: 안숙로의 손자, 조선 세종의 부마. 안진(縝)
: 현종 때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내고 숙종 때 황해도관찰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안윤행(允行) : 영조
때 대사헌 ·형조판서를 거쳐 돈령부판사에 이르렸다. 안광직(光直)
: 이조판서를
지냈다..
안윤행(允行) : 충헌공(忠憲公)
안경수(駉壽) : 의민공(毅愍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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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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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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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죽산(竹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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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승(承) 연(淵) |
병(秉) 상(相) |
훈(勳) 환(煥) |
성(聖) 재(載) |
용(鏞) 회(會) |
홍(泓) 기(淇) |
상(祥) 래(來) |
혁(赫) 열(烈) |
중(重) 주(周) |
종(鍾) 홍(洪)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성(誠) 한(漢) |
직(稷) 인(寅) |
묵(默) 경(炅) |
극(棘) 설(卨) |
호(鎬) 신(信) |
영(永) 강(康) |
의(義) 식(植) |
기(紀) 아(雅) |
경(慶) 배(培) |
탁(鐸) 상(商)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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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準) 원(源) |
규(揆) 영(永) |
연(然) 걸(杰) |
균(均) 규(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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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53,522명. (1985년) 17,357가구, 56,051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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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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