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원의 아들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746년
정언.
지평을 거쳐, 1749년 헌납으로 윤급(尹汲).
송영중(宋瑩中)의 석방을 주장하다 파직되었다. 1751년 수찬.
교리를 지내며 직언하다가 왕의 비위에 거슬려 파직, 1753년 부교리에
등용되고, 1758년 승지를 거쳐 1760년 울산부사로 나갓다. 다음해
대사간이 되어 왕이 세자의 진현을 받아들이도록 권하여 삭출된 뒤,
1763년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이 해 형조참판에 전임되고, 1767년 대사헌, 1769년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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