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가 뛰어난
장사로서 1453년(단종 1) 한명회(韓明澮)의 권유로 수양대군(세조)의
휘하에 들어가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을 제거하는 데 가담, 정난공신으로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가 양산군(楊山君)으로 개봉되고,
1457년 공조판서 등 여러 내외직을 거쳐 평안도 도절제사.
영변부사를 겸임했다.
1466년 중앙에 돌아와 세조가 베푼 위로연에서 왕에게 선위하고
여생을 편히 보내라고 진언하자 세조가 이를 받아들여 세자에게 옥새를
전하려 했으나 한명회, 신숙주(申叔舟) 등의 반대로 취소되고 선위를
진언한 죄로 성문 밖에서 참수되고 아들들은 성주의 관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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