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 송국전의
아들이다.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검열을 거쳐 지평 정언 사예 응교 서천군수를 역임하였다.
현종 때 수찬 이조좌랑을 역임하고 1667년(숙종 3) 사간을 거쳐
집의에 올라 예론으로 귀양간 송시열의 신원을 주장하여 파면당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다시 기용된 후 승지
대사간 충청도 관찰사 대사헌 동지중추부사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1699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 후 우참찬 예조판서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고, 80세 때 지돈령부사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어졌으며 글씨도 잘 썼다.
회덕의 미호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제월당집(霽月堂集)'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