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의 맏아들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572년(선조 5) 이조참의에 오르는 동안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척신 출신이지만 사림들 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 사류들에게 촉망을 받앗다.
이때 김종직(金宗直)
계통의 신진세력으로
김효원(金孝元)이 정계에 등장하여
이조정랑으로 천거되자 김효원이일찍이 명종조의 군신이던 윤원형에게
아부한 사실을 들어 이를 반대했으나 1574년(선조 7) 결국 김효원이 이조정랑으로 발탁되고
이듬해 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정랑으로 처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하여 서인, 신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이라
하여 동서분당이 발생했다. 이때 부제학 이이(李珥)는 그를 개성유수,
김효원을 부령부사로 전직시켜 당쟁을 조정하려 했으나 이미 뿌리박힌
양당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 후 사직하고 낙향했다가 1580년
예조참판으로 등용, 정인홍(鄭仁弘)의 탄핵을 받았으나
이이의 변호롤 무사했고, 그 후
전주부윤을 지낸 뒤 대사헌이 되었다가 이이가 죽은후 동인이 즉세하고
서인이 몰락하자 파직당했다.
나주의 월정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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