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류종혜(從惠) : 7세손, 조선 태조(太祖)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류중영(仲郢) : 12세손, 명종조(明宗朝)의
명신(命臣)으로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겸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가 되어
토호(土豪)들의 횡포를 엄중히 다스렸으며 육영(育英) 기금을 마련하여 교학 진흥에 공이
컸다. 류운룡(雲龍) : 류중영의 맏아들, 경사(經史)와 제자 백가(諸子百家)에 정통했으며 인동
현감(仁同縣監)을 거쳐 풍기 군수로 나가 토적(討賊)했고, 특히 풍화정치(風化政治)에 선정(善政)을 많이 베풀어 유능한 관리로
이름을 떨쳤다. 류성룡(成龍) :
류운룡의 아우, 선조(宣祖) 때의 명상(名相)으로 문장(文章)과 학행이 뛰어났다. 류진(袗)
: 류성룡의 아들, 광해군(光海君) 때 유일로 천거받아
세마(洗馬)가 되었고, 인조반정 후 봉화 현감(奉化縣監)을 거쳐 지평(持平)을 지냈으며,
류초(初) : 류진의 아우,
광국호성원종공신(光國扈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류원지(元之) :
류성룡의 장손, 성리학(性理學)과 역학(易學)에 밝은
학자로 "상수소설(象數小說)"을 지어 12패도(卦圖)의 근원을 밝혀 명성을 떨쳤다.
류세명(世鳴) : 류운룡의 증손,
숙종(肅宗)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사관(史官), 이조 좌랑(吏曹佐郞), 공충도
도사(公忠道都事)로 서천군수(舒川郡守)의 부정을 탄핵하여 파면케 하였다.
류규 : 정조(正祖) 때 경산현령(慶山縣令)으로 치적(治績)을
울렸다. 류태좌(台佐) : 순조(純祖) 때 대사간(大司諫)이 되어 문장(文章)으로 이름을 떨쳤다.
류후조(厚祚) : 도정(都正)
류심춘(尋春)의 아들, 1867년(고종 4)
좌의정(左議政)에 오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러 치사한 후 봉조하(奉朝賀)에 올랐다.
류도발(道發) : 한말(韓末)에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울분으로 시(詩) 한 수를 짓고 자결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을 받았다.
류신영(臣榮) : 고종(高宗)이 독살(毒殺)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문(祭文)을 지어 보내고 음독자결하므로써 문벌과 충절(忠節)의
가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