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임씨 (羅州 林氏) |
시조(始祖) : 임비(林庇) |
시조는 고려(高麗)의 대장군 임비(庇)이며, 선계는 문헌이 실전으로 상고할 수 없다.
임비는 고려 1281년(충렬왕 7) 왕(王)을 호종(扈從)하여 원(元)나라에 다녀온 공(功)으로 시종보좌이등공신(侍從輔佐二等功臣)에 책록되고 대장군(大將軍), 충청도 도지휘사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이르렀다.
임비의 9세손 임탁(卓)이 봉순대부로 해남감무(海南監務)를 역임하던
중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會津)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으나,
회진현(會津縣)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本貫)을 나주(羅州)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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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장수공파(長水公派) : 임익(임탁의 8세손) ·정자공파(正字公派) :
임복(임탁의 8세손) ·절도공파(節度公派) : 임진(임탁의 8세손) ·첨지공파(僉知公派)
: 임몽(임탁의 8세손) ·도정공파(都正公派) : 임유소(임탁의 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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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임탁(卓)
: 임비의 9세손,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렸다(고려말(高麗末) 두문동(杜門洞) 칠십이현(七二賢)).
임붕(鵬) : 임탁의 7세손, 경주부윤과 광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임서(㥠) : 임붕의
아들, 선조 때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찰사(인조 때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임제(悌)
: 임진의 아들,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과 지제교를 역임하였다.
·임담(墰) : 임서의 아들. 인조 때
문과에 급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하고 이조판서, 의금부판사를
지냈다. ·임한호(漢浩) : 승지 임상원(象元)의 아들. 정조 때 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순조 때 우의정을 역임했는데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벼슬할 수 있게 하였다.
·임득명(得明)
: 시, 서, 화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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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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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전남 곡성군 우달면 일원 전남 나주군 다시면 일원 경북 달성군 화원면 설화동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전남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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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전남
나주(羅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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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진(鎭) |
수(洙) |
상(相) |
병(炳) 묵(默) |
규(圭) |
종(鍾) 석(錫) |
택(澤) 순(淳) |
채(采) 채(采) |
섭(燮) 렬(烈) |
재(在) 기(基)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현(鉉) 선(善) |
자(滋) 태(泰) |
식(植) 근(根) |
광(光) 현(顯) |
균(均) 중(重) |
호(鎬) 용(鏞) |
승(承) 원(源) |
영(榮) 락(樂) |
희(熙) 환(煥) |
재(載) 교(敎)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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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浩) 일(鎰) |
해(海) 연(淵) |
모(模) 업(業) |
연(然) 성(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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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나주 262,862명, 회진 3,629명. (1985년) 나주 236,877명, 회진 1,673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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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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