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년(명종 21) 문과에 급제하고, 학유,
학록, 학정,
직강 등을 역임, 이어 충주목사, 사성,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수병장으로
활약했다. 이듬해 상주목사, 합천군수가 되었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다시 공을 세워 권율(權慄)의 추천으로 통정대부가 되어 명나라 접반사로 활약, 그 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판결사, 경주부윤 등을 역임했으며, 1616년 공조참의로
치사했다.
영주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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