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헌납. 집의 등을
지내고, 창왕 때 사의대부가 되었다. 공양왕이 즉위하자 이색(李穡) 부자를 전왕의 일파로
탄핵하는 한편 신돈(辛旽)의 잔당을 근절할 것을 간언했다. 뒤에 판전교시사가
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와 사헌부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가 정몽주가 살해되자 복직되어
좌우상시가 되었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호조전서로 개국공신
3등이 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태조 3) 중추원
부사, 교주강릉도 관찰사를 지내고 정당문학 경기좌도 도관찰사를 거쳐
판사평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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