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성종 5) 사마시를 거쳐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저작이 되고 1479년 총신사 이계동(李季仝)의 군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문과중시에 장원, 이해 어유소(魚有沼)의 건주위 정벌
때 그 막하로 출진한 뒤 돌아와 교리를 지내고, 1480년 사가독서했으며
세자시강원 보덕으로 세자(연산군)에게 풍간하며 학문을 진강하여 학문을
싫어하는 그의 미움을 받았다. 그 후 지평을 거쳐 연산군 즉위 초에
창원부사로 나갔다가 사임, 지리산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참수당했다.
성종 때 청백리에 녹선, 충효로 이름났으며 시문에도
능했다.
중종반정 후 도승지에 추증, 진주의 신당서원에 제향되었다.
'동문선(東文選)'에 시 1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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