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보로 벼슬에 등용된 후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가 되었다. 1211년(희종 7) 대사성, 한림학사로서 동지공서를
역임하고, 동북면 병마사, 예부상서를 거쳐 1216년(고종 3) 문무를 겸비했다하여
추밀부사, 한림학사 승지로서 상장군을 겸임했다. 1217년 서북면
병마사로 인주에 침입한 여진족을 대파하고, 이 해 수사공 상서 좌복야에
임명되어 귀경했다가 곧 다시 서북면 원수가 되어 김취려(金就礪) 등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거란군을 대파했으며 다음해에는 몽고군과 연합하여 거란군이
웅거하는 강동성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이어 정당문학, 판예부사에
오르고 곧 금자광록대부 수태위동중서 문하시랑 평장사가 더해졌다.
문하시중에 추증,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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