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산보(李山甫)의 사위이며, 이이(李珥),
성혼(成渾), 송익필(宋翼弼)의 문인.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1587년 감찰, 형조좌랑을
거쳐 1593년 황주판관으로 왜군을 격퇴한 공으로 중화부사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예조정랑으로 급고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대사간에 이르렀다. 1602년(선조
35) 성혼(成渾)의 문인이라는 혐의로 종성부사로
좌천되었다가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612년 (광해군 4) 도승지로 왕을
경연에 자주 나가도록 했고, 1614년 공조참판이 되었다. 1617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양양부사로 나갔가다 1년만에 사퇴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대사성 겸 동지경연, 원자사부가 되어 학제를 상정했고,
이괄(李适)의 난에 공주로 남행할 것을 주장했으며, 그 후 대사헌, 우참찬,
좌부빈객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수몽집(守夢集),
근사록석(近思錄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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