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양 이씨 (丹陽 李氏) | 
    
        |  시조(始祖) : 이배환(李盃換) | 
    
        | 시조 이배환(盃換)은 단산(丹山, 단양의 고호)사람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三韓)을 통합하는데 공을 세워 삼한공신(三韓公臣)에 책록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정확한 계대는 상고할 수 없고, 그의 10세손 이방규(方揆)를 중시조로 하여 계대해 오고 
있다.
 그후 14세손 판서(判書) 이거경(居敬)의 아들 이무(茂)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올라 지밀직사사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1398년(태조 7)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왕자의 난때 이방원(芳遠, 태종)을 도와 정사일등공신에 녹훈되고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 
            단산은 단양의 고호)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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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분파(分派), 계파(系派) ]고양파(高陽派), 
            북청파(北靑派), 영동파(永同派), 영변파(寧邊派), 용천파(龍川派), 중화파(中和派), 
진천파(秦川派), 황간파(黃澗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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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표적 인물(代表的 人物) ]이공로(公老) : 자는 거화(去華), 명종 때 문과에 급제, 
            추밀원 우부승선(承宣)을 
            거쳐 대사성(大司成)을 지냈다.
 이무(茂) 
            :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조선 태종 때 영승추부사, 우정승, 판병조사를 
            역임했다.
 이맹지(孟智) :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집의를 역임했다.
 이겸(謙) : 중종 때 중추부사(中和府使),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변호하다 파직되었으며, 영조 때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이지시(之詩) :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립(立) 
            :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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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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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집성촌(集姓村) ]평남 중화군 당정면 당촌리
 평북 용천군 내중면 대성동
 평북 용천군 내중면 명오동
 평북 철산군 백량면 
내암동
 충남 공주군 우성면 보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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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단양(丹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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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항렬표(行列表) ]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 언(言) | 문(文) | 지(之) | 일(一) | 홍(弘) | 여(汝) | 양(陽) | 봉(鳳) | 성(聖) | 도(道) |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  |  
                    | 학(學) | 상(相) | 대(大) | 기(基) | 석(錫) | 윤(潤) | 근(根) | 희(熙)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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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구(人口) ]3,537가구, 14,343명. (1985년)
 16,213명. (2000년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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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관련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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