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승(奇大升)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장원,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평소에
이발(李潑)·정여립(鄭汝立)
등의 반복 무상함을 꺼려 이발의 무리 이순인(李純仁)을 탄핵하다가
이발에게 배척당해 한직에서 맴돌았다. 그 후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탄로되어 일당이 처형되었으나 그 잔당의 용사로 관직이 삭탈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자 임해군 진과 순화군 보가 동과 북으로
각각 피란하게 되었는데 순화군이 그의 사위였으므로 선조가 그의 부자에게
호위를 명했다. 처음 강원도로 갔다가 적병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경도로 피신했는데 회령에서 두왕자와 함께 반민에게 포박되어
적진에 넘겨졌다. 분함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기도했으나 적에게
발각되고 또 왕자의 간곡한 만류로 이루지 못하다가 화의가 교섭되면서
부산에서 풀려나왔다. 그러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정욱이
호소사가 되어 당시 집권층을 배척하는 격문을 지었는데 이로 인해 집권층의
모함을 받아 아버지 정욱은 길주로, 그는 이산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신천으로 위배되었다. 앞서 이이첨(李爾瞻)의 됨됨이를 풍자하여
노래를 지었는데 이이첨이 이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가 광해조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황정욱과 사이가 나쁜 신점(申點)의 손자 율(慄)과 제휴하여
그의 외손자인 진릉군 태경(泰慶)을 왕으로 추대한다고 옥사를 일으켜
옥중에서 죽었다.
인조반정 후에 복관되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좌찬성에 추증, 장천군에 추봉되었다.
저서로 '독석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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