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고려 인종 때)에 묘청(妙淸)이 일으킨 난.
당시
이자겸의 난(李資謙 亂)으로 민심이 흉흉한 데다 밖으로는 새로 일어난 금나라가
고려에 압력을 가해와 사회가 크게 불안하였다. 이에 서경 출신 귀족들은
개경파 귀족을 몰아 내고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자 서경 천도와 금나라
정벌,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 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부식 등 보수적인
개경파 귀족들이 이에 적극 반대하므로, 묘청은 서경에서 난을 일으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였다. 묘청의 무리는 한때 자비령 이북의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기세를 떨쳤으나, 김부식의 토벌로 1년 만에 진압되었다.
이 난이 있은 뒤 고려 지배층의 보수화가 더욱 심해져 북진 정책은 좌절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