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중종 14)에 남곤(南袞),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 등 훈구파의 재상(勳舊派宰相)들이 당시 새로운 혁신을
감행한 젊은 선비들에게 화(禍)를 입힌 사건이다. 연산군(燕山君)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中宗)은 정치를 개혁하고, 패기에 넘치는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등용하여 성리학(性理學 = 주자학)을 크게
장려 하였다. 이에 조광조 등은 중종의 신임을 받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행하고 자격이 없는 공신들의 공신호(功臣號)를
박탈하는 등 과격한 혁신정책을 썼다. 여기에 불안을 느낀 심정, 남곤,
홍경주(洪景舟) 등이 갖은 모략과 음모로 조광조 일파가 민중의 지지를
받아 반역을 꾀한다고 주장하여, 30대 젊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고
이를 옹호한 대신들이 파면되거나 죽음을 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