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이다.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었으나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이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숙종 때 덕원부에 유배되고, 남인이 득세하자 산중에 들어가 학문에만
전념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송시열이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되자 이별을 고하고 의복과 책을 유품으로 받음
뒤에 숙종의 총애를 받아 우의정·좌의정 등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했다.
이이(李珥)를 조종으로 하는 기호학파의 지도자로서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충주의 누암서원, 청풍의 황강서원,
정읍의 고암서원, 성주의
노강서원, 보은의 산앙사, 예산의 집성사, 송화의 영당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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