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에 급제, 성균직강(成均直講)으로 정추(鄭樞)등이
신돈(辛旽)을 탄핵하다 투옥된 사건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 비서감승을 거쳐 우왕 때 사헌집의, 지신사, 밀직제학을 역임하고,
1392년(공양왕 4)에 문하평리 겸 대사헌이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예문춘추관
대학사(藝文春秋館大學士), 1395년 좌복야를 겨쳐 신도궁궐조성도감 도청으로서 종묘(宗廟)·궁궐 신축에
공이컸다. 1397년 문하시랑 찬성사·서북면 도찰리사로 왜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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