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지대(之岱, 시호는 영헌)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넷째 아들 김은열의 8세손]의 9세손이며 1219년(고려 고종
6)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 교감, 진주목사, 경상도 안찰사, 정당문학,
이부상서를 역임하고 금자광록대부 중서시랑 평장사를 지내고 오산군(鰲山君,
오산은 청도의 고호)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청도(淸道)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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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 人物) ] 김선장(善莊)
: 김지대의 아들, 1340년(충혜왕 복위1) 조적(曺頔)의 난이 일어난
후 왕이 원(元)나라에 불리어 갈 때, 대호군으로 왕을 호종하여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김복기(福基) : 합문지후를
지냈다. 김한귀(漢貴) : 1362년(공민왕 11) 병마사가 되어 여러 장수와 함께 홍건적을 토벌한
공(功)으로 공신에 책록되어 감찰대부·개성윤을 거쳐 밀직부사에
올랐다가 전라도 순문사가 되었다. ·김점(漸) : 조선
태종 때 공조·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세종 때 형조·호조판서를
거쳐 돈령부사가되었다. ·김난상(鸞祥)
: 정언, 홍문관직제학,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김응하(應夏)
: 선조 때의 성리학자,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시켰으며, 문장에
능하여 '정수재유고(靜修齋遺稿)를 집필하였다. ·김정호(正浩) : 지리학자로 순조말
'청구도'를 완성하였고, 1861년(철종 12) '대동여지도'를 교간하고
이어 '여지승람'의 착오를 정정 '대동지지'를 집필하였다.
김익동(翊東) : 학자(學者)이다. 김도일(燾一)
: 동지돈령부사를 지냈다. |
[ 집성촌(集姓村) ] 1930년 당시 충북 중원, 충남 아산, 전북 남원 고창, 전남 화순 구례, 경북 의성 달성 군위 영주, 경남
밀양군 청도면, 양산군 동면, 거창군 일원, 황해도 신천 황주, 평남 대동군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984년에도
충남 부여, 보령, 전북
고창, 남원, 김제, 정읍, 전남 화순, 구례, 경북 경산, 영주, 청도, 달성,
경남 거창, 밀양군 청도면 일원(一圓)에 세거(世居)하고 있다. 특히 경남
밀양군 청도면 일대는 1천여 가구에 청도김문(淸道金門)이 밀집해 살고 있다.
[위의 집성촌 자료는 김노철님이 제공해 주신 자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