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서울로 이주. 미천한 가문의
출신 이었으나 학문을 열심히 닦았으며, 정밀한 지도의 작성에 듯을
품고 전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30여년간의 노력 끝에 순조 말년
'청구도(靑丘圖)' 2첩을 완성했다. 그 후 '청구도'에 불만을
느끼고 다시 전국을 답사하여 철종 12년 '대동여지도(大同與地圖)'를 집필
이밖에 '지구도'를 제작했다 한다. 이어 '여지승랑(與地勝覽)'의
착오를 정정하여 '대동지지(大同地志)'를 집필하였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손수 그려서 판각했으며, 이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고루한 조정에 의해 나라의 기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각판(刻板)은
불태우고 투옥시켜 옥중에서 일생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