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성의 증손이다.
음보로 무관에 등용되어
1450년(문종
즉위) 조전 절제사에 오르고, 1453년(단종 1) 행회령부사를 거쳐
1456년(세조
2) 판의주목사를 지냈으며, 다음해에 행첨지중추원사(行會寧都護府使)로서 사은사가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0년 판영북진도호부사(判寧北鎭都護府使)가 되어 여진 정벌에
참가, 그 공으로 경성절제사(鏡城節制使)가 되고,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전북 장군으로 어유소(魚有沼)와 함께 적을 대파, 난을 평정했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 1등이 되고, 신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이 해 건주위 이만주의
토벌 때 서정장군으로 좌장군 어유소(魚有沼)ㆍ우장군 남이(南怡) 등과 함께 이를 소탕하고,
1468년(예종 즉위)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나 반란을 꾀했다는
류자광(柳子光)의 무고로 남이(南怡)와 함께 사형되었다. 1818년(순조 18) 누명이 풀리고
복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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