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李理)의 문인이다.
1568년(선조 1) 사마시, 1573년 식년문과에
급제, 1592년 임진왜란 때 전라도 소모어사가 되어 병마, 군기를 수습한
뒤 수언에 주둔하여 기호 지방의 적에 대비했다. 그 뒤 조도사로
양천에 주둔하여 누차 전공을 세웠고, 화차 30량을 제조하여 순찰사
권율(權慄)에게 주어 행주대첩을 이룩케 했으며 조도사 및 독운사를 지내면서
군량 수십만석을 거두어 명군에 조달했다. 1603년(선조 36) 함안군수로
부임하여 1605년 사직하고, 이이(李珥),
성혼(成渾)에게서 학문을 닦았다.
이조참판에 추증, 장성의 봉암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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