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돈령부사 박필균의 손자이며 박사유의 아들이다.
30세에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에게 지구의 자전설을 비롯한 서양의 신학문을 배우고,
1780년(정조
4)진하사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청나라에 가서 중국인들의 이용후생하는 실생활을
보고 실학에 뜻을 두었다. 1786년 왕의 특명으로 선공감감역을 거쳐
사복시 주부, 의금부 도사, 한성부 판관, 안의현감, 면천군수 등을 지내고,
양양부사에 승진했다가 1801년(순조 1) 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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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북학파의
영수로서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으며, 그가 쓴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정치, 경제, 천문, 지리, 문학 등 각 방면에 걸쳐 청나라의 실학사상을
소개했다. 또한 10편의 한문소설을 지어 독특한 해학으로써 고루한
양반을 풍자하는 등 독창적인 문체를 구사했다.
정경대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연암집(燕巖集), 허생전(許生傳), 과농소초(課農小抄), 양반전(兩班傳)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