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예 박곤의
아들이다.
1568년(선조 1) 학행으로 피천, 내시교관 종부시 주부를 지냈다.
157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춘추관 기사관, 전라 충청도의 도사,
지평, 예조정랑 등을 지내고 봉상시정 때 신병으로 사직했다. 임진왜란
때는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모아 훈련을 시키는 한편, 군량을 수집하고
병기를 수선하여 권율(權慄)을 도왔다. 1593년 나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광주의 의열사, 운봉의 용암서원에 제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