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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name.info :+: 김천일(金千鎰) - 언양김씨(彦陽金氏)

 

 김천일 (金千鎰)

 [ 1537 ∼ 1593 ]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
   자 사중(士重).
   호 건재(健齋) ·극념당(克念堂).
   시호 문열(文烈).
   나주 출생.


  이항(李恒)의 문인,
  삼장사(三壯士)의 한 사람.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업, 유일로 천거되어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 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高敬命), 박광옥(朴光玉),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수백명을 이끌고 선조가 피난간 평안도로 향하다가 수원성을 거쳐 강화성에 들어갔다.
  조정으로부터 판결사(判決事)의 벼슬과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고, 왜적 점령하의 서울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백성들로부터 많은 군자금을 얻었으며, 때로는 한강변의 여러 적 진지를 급습했다.
  이듬해 정월, 명나라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개성을 향해 남진(南進)할 때 이들을 도와 도로(道路)ㆍ지세(地勢) 및 적정(敵情)들을 알려주어 작전을 도왔고, 왜적이 남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자 적을 추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받고 진주성(晋州城)에 주둔, 절도사 최경회(崔慶會), 황진(黃進), 고종후(高從厚), 장윤(張潤) 등과 함께 사수(死守)를 다짐했다.
  그후 왜적의 대군이 내습, 황진, 장윤이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적병이 성벽을 넘어 난입하여 백병전이 벌어질 무렵, 아군은 화살이 떨어지고 창검이 부러져 대나무 창으로 응전했다가 마침내 성이 함락 당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 자결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나주의 정렬사(旌烈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
  태인의 남고서원(南皐書院),
  임실의 학정서원(鶴亭書院) 등에 제향(配享)되었다.

  저서에 송천집(松川集), 문집에 '건재집'이 있다.

 

 

 언양김씨(彦陽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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