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경사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치다가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좌정언, 이조좌랑, 예조정랑 등을
거쳐 1409년에 이조정랑이 되었다. 1414년 지승문원사로 노비 변정도감이
설치되자 제 10방의 담당자로서 신속 공정히 판결했다. 그 후 우부대언을
거쳐 1422년(세종 4) 병조참의, 동지우군총제,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했다.
1424년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류관(柳觀) 등과 함께
정도전(鄭道傳)의 '고려사(高麗史)'를
수교하고, 1427년 예문관 제학이 되었고, 1432년 왕명으로 신장(身長)과
함께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를 편찬했다. 그 후 중추원서
겸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1434년 집현전에서 왕명으로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편찬을 맡았으며, 병조판서, 예 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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