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팽손의 아들이다.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급제, 공조좌랑을 거쳐 1556년 문과중시에 장원, 이듬해 공조정랑에
재직중 김홍도(金弘度)와 함께 권신 윤원형(尹元衡)에 의해 파직당했다. 1560년
복직되어 1565년 수찬을 거쳐 진주목사가 되고, 1574년(선조 7) 경주부윤
때 앞서 진주에 재직 때 협잡했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578년 공조참판에 다시 기용되고, 성절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부정을
저질렀다는 죄로 다시 파직당했으며, 그후 대사성에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났고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송천집(松川集),
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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