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元均) |
[ 1540년(중종 35) ~ 1597년(선조 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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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造山萬戶)로 있을 때 변방 오랑캐를 무찌른 공으로 부령부사(富寧府使)로 특진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서, 왜군이 침입하자 전함·무기를 버리고 1만여 수군을 해산시킨 뒤 전함 3척을 이끌고 왜군을 피하였다. 이때 옥포만호(玉浦萬戶) 이운룡(李雲龍)의 항의를 받고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에게 원군을 요청, 옥포 앞바다에서 30여 왜선을 격침시켰다. 왜적이 당포(唐浦)에 이르자 이순신의 원병과 합세, 곤양(昆陽)에서 격파하고 사천 앞바다로 추적해 무찔렀다. 1593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되어 지휘권을 장악하자 이에 불복,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좌천되었다. 이때부터 이순신을 모함 투옥하였다.(1597년 초여름에 권율의 출정명령을 어긴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우수사 겸 경상도(수군)통제사가 되어, 7월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출격했으나 적의 유인전술에 걸려 칠천도(漆川島)해전에서 전멸, 거제도에 상륙하여 도주하다가 왜적에게 참살되었다. 1603년(선조 36)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추록,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원릉군(原陵君)에 추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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