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자를 거쳐 1523년 사가독서를 했으며, 그 후 수찬 제주목사 승지,
병조 예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고, 1544년 형조참판으로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성이 되어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했다.
그 후 대사헌 이조참판을 역임하고, 1545년 을사사화에 한성부 좌윤에서
파직되어 청주에 은거중 윤원형(尹元衡), 이기
등에 의해 사사되었다.
성리학의 대가로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다.
청주의 신항서원, 문의의
노봉서원, 전주의 화산서원, 제주의 귤림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
"규암집(圭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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