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만주로 이주하여 광복회에 참가, 1918년 만주주재 민족대표 39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다음해 대한독립단장 조맹선(趙孟善)과
협의하여 하얼빈의 러시아 군대에 한인청년 훈련과를 설치하려다가 일본
경찰의 방해로 실패했다. 1931년 중국 중경으로 가서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의열단 등을 통합, 민족혁명당을 결성하여 김규식(金奎植),
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간부가 되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으나
병사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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