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에 보직되었다가
1514년 사가독서했고, 1529년 형 심언경과 함께 유배중인 김안로(金安老)의 용서를 주청하여
예조판서에 등용케 했다. 응교 직제학 대사간 부제학을 역임,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김안로가 차츰 횡포를 일삼고 그의 외손녀를 세자빈으로 삼으려
하자 이를 극력 반대한 탓으로 김안로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우참찬을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으나 앞서 김안로를 구출한 일로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신원되었다.
문장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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